MUSICA 2025년 7월호 (2025. 6. 15)
*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 부연 설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2년 3월에 두 번째 앨범 ‘LOVE ALL SERVE ALL’ 을 발매한 후, 혼자만의 퍼포먼스로 전국 29개 지역에서 32회의 순회 공연인 홀 투어 ‘후지이 카제 alone at home tour 2022' 를 거쳐, 같은 해 10월 15일, 16일에는 파나소닉 스타디움 스이타에서 밴드 편성으로 자신의 첫 스타디움 라이브를, 그리고 2022년 12월~2월에 걸쳐 16회 공연한 국내 아레나 투어 ‘러브 올 아레나 투어’ 를 개최한 후지이 카제. 같은 시기에 ‘시누노가 이이와’ 가 전 세계에서 바이럴 히트. 그 이상의 큰 기대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중, 2024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그는 5번 정도 LA로 건너가, 때로는 몇 개월 간 장기 체류를 하면서 악곡을 제작해 왔다. 물론, 다가올 세 번째 앨범을 내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순조로워 보이는 상황 속에서 카제는 아주 큰 갈등 속에 있었다. 이 인터뷰는, 그런 그의 속내를 드러낼 만한 명확한 대답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야말로 지금 느끼는 리얼한 감정과 솔직한 가슴 속 이야기를 말로 내뱉어 (글로)남기기 위해 실시한 것이다. 2024년의 더운 여름, 두 시간 반에 걸쳐 차분하게 마음 속에 뒤섞이는 생각들을 이야기한, 그 기록. 이번 특집은 그 인터뷰부터 시작되었다.
올 한 해는 LA에서 작업을 시작한 것을 포함해, 지금 카제 군에게 있어서 (음악 인생의) 또 다른 한 편이 시작되는 시기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2022년에) ‘러브 올 서브 올’ 을 발매하고 나서 2년 동안은 카제 군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2년 동안 어떤 시간이었냐구요..!
갑자기 두리뭉실한 질문을 해서 미안해요. (웃음)
후후후.. 글쎄요. 우선 ‘그레이스’ 와 파나스타 라이브가 저에게 있어서는 졸업식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레이스’ 가 졸업식 노래고, 파나스타 라이브는 졸업식 행사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렇다는 건 2022년 10월에 발매된 ‘그레이스’ 라는 곡과 같은 달에 있었던 ‘파나소닉 스타디움 스이타’ 이틀 간의 라이브가. ‘HELP EVER HURT NEVER’ 부터 ‘LOVE ALL SERVE ALL’ 까지를 집대성한, 거기서 일단락짓는 듯한 그런 느낌이 있었다는 건가요?
맞아요. 정말로 그런 느낌이었어요. 2022년은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였거든요. 우선 ‘시누노가 이이와’ 가 갑자기 태국에서 바이럴 되기 시작했고. 2022년 가을 쯤에.
네. 태국에서 시작된 ‘시누노가 이이와’ 열풍은 2022년 9월에 스포티파이 글로벌 바이럴 차트에서 최고 순위 4위를 기록했어요. 게다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이집트, 캐나다, 프랑스 등 17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65개국의 데일리 바이럴 차트에서 톱 100에 진입하게 되는 결과를 달성하게 되었어요.
맞아요. 그것과 ‘그레이스’ ‘파나스타’ 가 겹쳐서.. 그 때 저는 제 모든 기력을 전부 다 불태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의 이름이.. 인터넷상에서 저의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혼란스러움이 저를 갑작스럽게 압박해왔던 게 2022년 말이었어요.
그 혼란스러움이라는 건 어떤 혼란스러움이었나요?
여러 가지였는데요. 뭐가 맨 처음이었더라..? 우선은 해외 팔로워들이 늘어나서, 제가 영어로 트윗을 하거나 하면 일본 팬 분들이 불안해하는 그런 게 있었고.
‘우리 카제 군이 멀리 가버리는구나’ 같은.
네. 정말 일부이긴 한데, 일본에서 저를 응원해 오신 분들에게는 그런 위기감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원래 해외 문화나 팝 문화 같은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걸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렇게 SNS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외국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원인이 되어 팬들 간에 대립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어요. 그와 동시에 영어권 분들이 저의 음악을 듣게 되다 보니 예전에 올렸던 커버 영상에서 노래했었던 N 워드 같은 게 나오게 되었고..
아, 그랬구나. 2018년에 유튜브에 올렸던 커버 영상에 N 워드가 포함된 곡을 그대로 불렀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카제 군도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노래했다는 것에 대해 사과했었죠. 그것도 같은 시기(2022년)였어.
맞아요. 그 모든 일들이 전부 2022년 가을에 집중되었어요. 그리고, 앨범 타이틀인 ‘HELP EVER HURT NEVER’ ‘LOVE ALL SERVE ALL’ 에 대해서도 특정 종교를 포교하는 게 아니냐. 라는 의혹이 나왔고.
아, 주간문춘(잡지)에 실린 거.
맞아요. 그런 것들이 2022년 가을에 집중적으로 밀려왔어요. 제 곡이 해외에 널리 알려져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구독자가 아주 많이 늘어나게 된 기쁜 일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치 그것과 밸런스를 맞추는 듯한. 그런(안 좋은) 일들이 갑자기 밀려 들어왔어요. 역시 좋은 일이 있으면 그만큼 힘든 일도 일어나는구나. 라는 걸 느꼈고.. 하지만 저 자신도 ‘그레이스’ 와 파나스타에서 한번, (노래와 무대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걸 다 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런 (좋지 못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하지만 투어(2022년 10월~2023년 2월, 러브 올 아레나 투어) 도 있었고. 모처럼 국내외에서 저의 음악을 들어 주시는 분들도 생겼고.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떤 것이 동기부여가 되어서 활동을 해 나가야 할지, 앞으로 계속 찾아야 했어요. 그것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사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레이스’ 와 파나스타 이후부터는 계속 그걸 찾아 나가는 날들이에요.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그레이스’ 는 ‘러브 올 서브 올’을 전부 다 만들고 나서 만든 곡인 거네요?
네, 맞아요.
‘HELP EVER HURT NEVER’ ‘LOVE ALL SERVE ALL’ 두 작품은 철학적으로도 카제 군이 이제까지의 인생에서 소중히 해 왔던 것,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고 싶은 것을, 그 때의 시점에서 다 노래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리고 ‘그레이스’는 본인이 그 두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노래했다는 보람을 느낌과 동시에 그걸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곡이기도 한가요?
아니오, 만들 때에는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표현해 오면서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어’ 라는 걸 솔직한 언어로 표현한 게 ‘그레이스’ 에요. 딱히 어려운 말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난난’ 이나 ‘모에와’ 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을 붙이지도 않았어요. 아주 명확하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어요’ 그렇게 노래했어요. ‘그레이스’ 는 젊은이들이 이 곡을 듣고 받은 느낌을 영상으로 만드는 캠페인의 주제곡이었으니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 는 걸 주제로 해서,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어도 한발짝 나아갈 수 없는 학생들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탄생한 NTT 도코모 프로젝트 ‘카제 필름 도코모 퓨처 프로젝트’ 의 CM 곡으로 쓰여진 곡) 그 덕분에 제가 정리한 것들을 전부 다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락짓는 곡이 된 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거에요. 게다가 그게 파나스타라는, 제 사상 최대 규모의 원맨 라이브와 겹쳐지게 되어서 결과적으로는 제 모든 걸 다 불태우게 된 거에요.
실제로 카제 군의 데뷔 앨범인 ‘HELP EVER HURT NEVER’ 가 나온 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였는데. 첫 일본 부도칸 공연도 많은 제약 속에서 개최했었고. 첫 히트곡인 ‘키라리’ 이후 닛산 스타디움에서도 무관객 라이브를 했었고. 2021년 말 아레나 투어에서도 관객 수 제한이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전 좌석 관객을 모두 채운 스타디움 원맨 라이브를 했었던 파나스타 이틀 공연은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하나씩 쌓아 올려 온 것들 집대성하는 느낌이었겠네요.
정말 그래요. 아까 말했듯 ‘그레이스’ 를 발매한 것도 그렇고. 정말 집대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라이브였어요.
다만 카제 군이 말한 것처럼 집대성하려고 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본인이 생각지 못했던 일들도 포함한, 혼돈이 덮쳐 왔다. 아까 ‘어떤 것에 동기부여를 받아서 활동해 나가야 할까’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본인이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지 / 없을지, 아직 하고 싶은 게 있는지 / 없는지, 그런 마음이었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이대로 은퇴해야 되나 할 정도였어요.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에 낸 적도 있어요. ‘그레이스’ 를 냈을 당시의 제 마음 속의 캐치프레이즈는 ‘지금까지 고마웠어’ 였거든요. 정말로 뭔가가 끝난 기분이 들었어요. 곡을 완성하고, 이제 발매하자, 할 때도 그랬었어요. 무언가가 끝났고, 그 뒤는 전혀 모르겠는. 그런 상태였어요. 하지만 아레나 투어가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만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러브 올 아레나 투어’ 네요. 그건 ‘LOVE ALL SERVE ALL’ 투어이기도 한 건가요?
그렇긴 한데요. 저에게는 파나스타 라이브가 집대성이었기 때문에 이 이상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나스타의 실내 버전 같은..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요. 파나스타 이후로 투어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그 투어는 아주 좋아하는 투어가 되었지만요.
저는 2월 15일 요코하마 아레나 둘째 날, 투어 파이널에 갔었는데요. 파나스타와는 전혀 다른 아주 멋진 라이브였어요.
사실 마지막 날에는 좀 감기에 걸렸었어요. 첫날부터 감기에 걸려 있던 상태였는데. 둘째 날에 그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버렸어요.
그랬어요? 전혀 모르겠던데. (웃음)
들키지 않을 만한 사람에게는 (일반 관객에게는) 들키지 않을 정도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자신에게는 좀 아쉬움이 남은 마지막 날이었어요. 하지만 그 때의 아레나 투어의 내용과 그 시기는 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앞으로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눈 앞의 아레나 투어는 당연히 성심성의껏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거에요. 그와 관련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나요?
제 모든 걸 보여주는 투어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었어요. 그래서 뭐랄까.. 좀 더 장대한 영화 사운드트랙 같은.. 뭔가가 끝나는 듯한 느낌을 줘도 되지 않을까. 거기서 영감을 얻었어요. 예를 들자면 이게 내 마지막 투어가 된다면 어떤 투어를 만들까. 좀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장난스러움이 곁들여진. 안녕을 말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의미에서 그 정도 규모에서는 잘 하지 않는 피아노 연주 곡을 노래하기도 하고.. 좋은 의미에서 파나스타 라이브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아요. 파나스타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었던 집대성 투어. 같은. 그런 밸런스가 잘 잡혔던 것 같아요.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이전 표지모델(2022년 5월호) 때 했었던 인터뷰를 다시 읽어 보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음악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었고. 팝 뮤직이나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해 나가고 있는 장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분간 영상 업로드를 중단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즉 카제 군에게 있어서 아티스트로서 활동한다는 건 잠깐 좀 유명해진다거나 일시적인 놀이 같은 게 결코 아닌, 긴 인생의 목표, 팝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렁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와는 상관없이 데뷔 이후 3년, 비교적 단기간에 아티스트로서의 끝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 정도로 두 개의 앨범과 그레이스, 파나스타까지. 본인이 팝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있던 게 하나씩 실현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카제 군이 그런 발언을 한 건 상당히 의외인데요.
그런 마음은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걸) 저도 잘 알아요(웃음). 음.. 지금은, 그렇게 해 나가면서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걸지도 몰라요.. 뭘까요.. 팝 가수라는 게, 말하자면 직업의 하나가 아니라 좀 더 인생의 한 단위로서 생각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는, 데뷔 직전에 했었던 ‘이런 곡을 내고 싶어’ 라고 생각했던 걸 최고의 형태로 선보이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좀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이 더 비중을 차지하게 된 거에요. 그 정도로 제가 해 온 것들에 대해서는 심플하게 만족스러웠고. 2022년에는 바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피곤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일단락지을 수 있을까.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음.. 그랬던 것 같아요. 더 좋은 인간이 되고,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아티스트 활동이라는 건 절대적이지 않다고. 그렇게 어렴풋이 해 왔던 생각이 확실해졌던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시점에는 ‘그레이스’ 라는, 본인이 이 사회와 세상을 향에 내뱉고 싶은 가장 큰 메시지를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특히 일본어로 -(일본어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일본어로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것 같았어요. 근데 요즘에 아주 오래 된 라인 메시지가 발굴되는데, 저도 놀라는데요. 친구에게 ‘20대 후반까지는 일본에서 열심히 하고, 해외로 나가는 건 그때부터야!’ 라고 선언한 적이 있어요. (웃음)
고등학교 때였나요?
아니오, 대학교 때였어요. 저는 대학엘 안 갔지만 제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때였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데뷔하기 전까지요. 그 무렵이 되면 슬슬 ‘야, 너 요즘 뭐해?’ 이렇게 되거든요. (친구들과 다르게 대학을 안 갔기 때문) 고등학교 때 저는 아주 해외 지향적이였어요. 제가 해외에서 활동하거나 해외로 갈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언제 갈 거야?’ 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우선 일본에서 제대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도 해외로 가야겠다는 목표를 그 당시에 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 라인(메신저)를 보고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맞아요. 그래서 파나스타와 그레이스 때 왠지.. ‘시누노가 이이와’ 가 틱톡 같은 데서 유명해지다 보니 ‘아, 아직 뭔가 더 해야 되는 건가’ 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어요. 아마 그 당시에는 (과거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잊고 있었을 거에요. 일본에서 활동하고 난 후에 해외로 간다. 그런 전망은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깨닫게 됐어요. 그렇지만 ‘내 노래가 바이럴 히트 되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거야!’ 라는 희망찬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그 당시에 있었던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렇군요. 이쯤에서 2022년 상반기를 돌아보고 싶은데요. 2022년 3월에 ‘LOVE ALL SERVE ALL’을 발매했어요. 그 후 4월에는 LA로 가서 첫 코라이트 세션(공동 작업)을 했어요. 그 때 코첼라도 갔었고. 백스테이지에서 아티스트와 인사를 하거나 LA의 스튜디오에서 여러 프로듀서들과 만나는 모습을 인스타 스토리 같은 곳에 올렸던 것 같은데.
맞아요. (웃음) 코첼라도 공동 작업도 다 처음이었어요.
실제로 2022년 4월에 A.G. 쿡, 브래드 팝, 서 놀란, 토바이어스 젠 주니어 이렇게 네 사람과 콜라보레이션을 했었죠. 예전부터 카제 군은 해외 문화를 좋아했고, 그리고 언젠가는 해외에 자신의 음악을 전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잖아요. ‘러브 올 서브 올’까지를 야플과 함께 만든 후, 그 다음으로는 미국의 프로듀서와도 함께 자신의 음악을 만들게 되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미국에 간 건가요?
그건 완전히 매니저의 계획이었어요(웃음).
그렇군요.
전혀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정말로 해외로 가야겠다는 그런 건 잊어버린 채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모처럼 기회를 얻었기에 아주 즐거웠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야망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 그 정도의 느낌.
그 당시에 세션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다들 자택에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그 곳에서 신세를 지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점심을 먹거나 했어요. 그러다가 그대로 스튜디오에 함께 들어가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곡을 만들었어요. 세션에 갔을 때.. 제가 급하게 비행기에서 생각해 온 걸 내놓기도 했어요. 어색해질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둬야 할 것 같았거든요.
아이디어 없이 제로인 상태에서 임하면 안 돼! 라는 생각이었나요?
맞아요. 뭔가 준비해야 돼! 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써 둔 소재 같은 것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누군가와 같이 만들어 가는 건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시도예요. 이런 쟁쟁한 분들과 시도를 해 본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웃음) 근데 제 마음속으로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처음부터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경험을 시도해 보자고. 결국 제가 준비해 간 소재로 A.G. 쿡과 세션을 하게 되었고 그게 ‘필링 굿’ 의 원형이 되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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